밤 11시, 여의도 IFC몰 지하 주차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한산했다.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라 차량도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강우진은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를 골탕 먹이려는 건가?’
그가 휴대전화를 확인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우진이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후드티를 깊이 눌러쓴 그는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채 우진을 향해 조용히 다가왔다.
“당신이 보낸 메시지입니까?” 우진이 물었다.
“ETF 코드 GLF01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요.”
“그게 뭔지 알고 있습니까?”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건 실체 없는 자본이 움직이는 통로입니다.”
금융감독원의 비밀 조사
한편, 금융감독원의 조사관 이서연은 공식적으로는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녀의 직감이 이 사건을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녀는 몰래 내부 시스템을 활용해 GLF01 ETF의 거래 계좌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수록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거래를 한 계좌들은 정상적인 투자 계좌로 보였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특정 시간대에 대량의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거래 패턴이 너무나 일정했다.
‘마치 미리 설정된 알고리즘이 움직이는 것처럼…’
서연은 즉시 컴퓨터에 코드를 입력해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였다. 특정 기업의 계좌가 패턴을 반복적으로 생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업은 단순한 개인 투자자가 아닌, 한도진 자산운용사라는 국내 대형 투자사였다.
‘이게 단순한 오류라면, 왜 거대 투자사가 관련되어 있는 거지?’
그림자 속의 거래
“ETF GLF01은 유령과 같습니다.” 남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거래소에 등록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존재하는 것처럼 거래됩니다. 하지만 그 자본이 어디서 흘러오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습니까?”
남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USB를 꺼내 우진에게 건넸다. “여기 있는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이 일에 발을 들이는 순간, 쉽게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우진은 USB를 받아들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그걸 알면 당신도 위험해질 겁니다.”
그 순간, 주차장 한쪽에서 강한 헤드라이트가 비추었다. 검은 세단 한 대가 빠르게 다가왔다.
“뛰어!” 남자가 외쳤다.
우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주차장 기둥 뒤로 숨었다.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 남자는 빠르게 몸을 숨겼고, 검은 세단은 그들을 향해 돌진하려다 멈추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한도진의 움직임
그 시각, 한도진 자산운용사의 회장실에서는 조용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강우진이라는 인물이 너무 깊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도진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는 절대 드러나선 안 된다. 처리하세요.”
비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진실을 향한 단서
우진은 겨우 숨을 돌리고 나서 USB를 손에 꼭 쥐었다. 이 안에 무언가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는 바로 집으로 향해 컴퓨터에 USB를 연결했다. 화면에는 여러 개의 암호화된 파일이 떠올랐다.
“대체 이 안에 뭐가 있는 거지…”
그는 USB 속 파일을 하나하나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 번호 표시 제한.
우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깊이 들어왔군. 빠져나갈 기회는 지금뿐이다.”
[용어 설명]
- IFC몰: 여의도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이자 금융 중심지.
- 유령 ETF: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았지만, 실제 거래가 이루어지는 ETF를 뜻하는 용어.
- 알고리즘 트레이딩: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매매하는 방식.
- 자산운용사: 투자 펀드를 관리하고 운용하는 금융회사.